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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 전부터 우려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평창 동계올림픽. 

하지만 우리가 17일간 지켜본 평창 동계올림픽은 걱정과는 다르게 그 어느 올림픽보다 질서정연했고, 다채로운 컨텐츠와 함께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대회를 지켜보며 느꼈던 점, 이색적인 부분 등을 중심으로 대회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략 종목의 다변화

우리나라는 금메달 5, 은메달 8, 동메달 4개를 획득하며 종합순위 7위를 기록했습니다(메달수로 집계한 순위에서는 OAR과 공동 6). 목표로 했던 금메달 개수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종합 순위는 10위권 안으로 진입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대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 의미 있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종목

메달 개수

세부내역

스피드스케이팅

7

1, 4, 2

쇼트트랙

6

3, 1, 2

스켈레톤

1

1

스노보드

1

1

컬링

1

1

봅슬레이

1

1


흔히 효자 종목으로 알려진 쇼트트랙 외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많은 수의 메달을 확보했으며, 스켈레톤, 스노보드, 컬링, 봅슬레이라는 새로운 메달권 종목을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메달을 획득한 위 종목들은 유럽, 북미권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더 놀라움을 주었으며, 향후 아시아 국가들이 더 많은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음을, 그리고 겨울 스포츠의 세력권이 어느덧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번 올림픽의 성과를 계기로 동계 올림픽 전략 종목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는 유연성이 생겼으며, 이는 금메달의 개수가 아닌 총 메달 개수의 순위로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 현재 흐름상 매우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IOC에서 공식화한 공식 집계 방식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는 금메달 개수보다는 총 메달 개수로 집계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특정 종목에만 집중하면 금메달 가능성은 높지만, 종목별로 정해진 메달 개수가 있어서, 다양한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메달 집계에서는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Rising Star

한동안 김연아로 대표되던 겨울 스포츠에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했습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 컬링의 팀 킴(Team Kim: 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은 국내 팬들의 관심을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과 경기에 대한 열정은 많은 관중과 취재진이 몰려드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이제는 광고에서 만나볼 수 있는 스타로 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김연아 외에 특출난 컨텐츠가 없었던 동계 스포츠 분야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들 대부분의 나이가 20대 초, 중반에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신체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며, 이는 세대교체를 넘어 우리가 해당 종목의 강자가 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정 종목에서 강국으로 거듭나는데 있어 집중적인 투자와 능력 있는 코치진, 전략적인 육성방안 등도 중요하겠지만, 뼈대가 되어줄 수 있는 중심 선수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러한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중심 선수는 현재를 이끌어줌과 동시에 미래를 잇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스타들의 등장은 향후 10년간 해당 종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대표주자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성의 시작 (귀화 선수)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개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는 많은 수의 귀화 선수를 대표로 선발하였습니다. 물론 당장의 성적이 중요한 만큼 현재 기량을 기준으로 하여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대거 발탁하여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메달권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아이스하키(11), 바이애슬론(3), 스키(2), 피겨(1), 루지(1) 등의 종목에서 총 18명의 귀화선수가 대표 자격을 얻어 출전하였으며, 메달권 진입보다는 출전 그 자체만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한국 국적의 부모나 조상이 있어서 추진했던 과거의 귀화와는 달리, 올림픽에서 국격을 높이고자 하는 국가의 정책과 대표선수로서 출전을 갈망하는 개인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져 예상보다 많은 수의 귀화선수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메달리스트로 등록된 선수는 없었지만, 그 선수들만의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다는 점, 추후 다른 대회를 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화 선수들의 가치는 높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달라진 자세와 시선

선수 외에 별도의 주 직업이 따로 있는 외국 선수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부분 엘리트 스포츠 문화에서 길러진 전담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습니다(물론 전문 선수가 출전하는 국가 역시 꽤 존재합니다). 그렇다 보니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올림픽 정신과는 달리 우선 꼭 메달을 따야 한다는, 이왕 딸 거라면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됨과 더불어 국민들의 관심도 남달랐습니다. “종합 순위 10위권 진입과 금메달 OO 는 올림픽에 참가할 때마다 우리나라 선수단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번 올림픽도 그러한 목표의식은 변함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대하는 선수들과 관중들의 의식은 많이 변화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선수들은 미소 짓기 시작했습니다. 패배에 우는 대신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선수들을 보는 관중 역시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패배에 대한, 실패에 대한 비난과 자책보다는 경기에 나서 맞서 싸워준 선수들에게 고생했다는 마음을 담아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했고, 승부를 위해 4년간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는 것을 이젠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전 매너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승부에 모든 것을 걸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 경기 그 자체를 즐기는 문화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국가의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등수가 아닌 경기내용에 주목하며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좋았던 점

물론 모든 대회가 그렇듯 아쉬움은 존재합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자원봉사자 논란, 고위직급자들이 발생시킨 이슈 등이 존재했지만, 그래도 다른 대회에 비해 사건/사고가 거의 없다시피 한 대회로 마무리되어 많은 외신들의 호평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전세계인이 참여하는 대회를 주최하고 운영하면서 사건/사고 없이 마무리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전세계 유일의 휴전국에서 펼쳐지는 대회인만큼 대회 개막 전부터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모두가 질서 정연하게 대회를 즐겼으며, “지갑을 차에 두고 내렸는데 바로 다시 찾을 수 있었다와 같은 미담사례가 공개되는 등 많은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갈수록 테러의 위협에 노출되는 전 세계인들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회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고, 선수들과 방문객들은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대회

다양한 컨텐츠가 결합된 개회식과 폐막식은 세계인들에게 문화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감케 해주었으며, 잘 관리된 경기장과 빙질은 각종 세계 신기록이 쏟아져 나온 원천이 되었습니다. 선수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제공되었고, 마스코트인 수호랑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대회를 잘 운영 해낸 것을 넘어, 추후 다른 국가에서 동계 올림픽 개최 시 기준이 될만한 레퍼런스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문화, 평화, 질서, 경기력 등이 조화된 이번 올림픽은 그 어느 대회보다 밸런스가 잡힌, 많은 부분에서 만족할만한 대회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생각해봐야 할 과제들도 많이 남겼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붉어진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선수간 갈등은 단순히 선수단이라는 범주에서의 문제로 끝난 것이 아닌 사회적인 이슈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신규 메달 발굴 종목들 역시 추후 좋은 대우를 받으며 계속 육성될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이번 올림픽은 개최국이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전략적인 귀화 선수의 영입과 비록 한시적이지만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귀화 선수들의 향후 계획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호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귀화를 하였지만 이 선수들이 과연 계속 우리나라에 남을지, 우리 역시 이러한 경험 많은 선수들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할 것입니다. 

달콤했던 이벤트가 지나고 다시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출발점에 섰습니다. 4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이벤트를 맞이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4년 뒤에는 더 많은 선수들과 관중들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대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