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실망, 그러나...

어제밤 12시 넘어 캠프에 도착해서 그런지 우린 8시에 비로소 일어나 2층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2층 식당에서 바라본 밖의 풍경은 일반적인 몽골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넓은 평원위로 펼쳐진 산맥, 산맥, 그리고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졌습니다.

가이드 한가이는 오늘 우리가 갈 곳인 오른터거를 가르켰습니다.

“아, 실망!!”

식당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언덕은 제주도의 물영아리오름 보다도 작아 보였습니다여기를 구경하려고 6시간을 승합차로 달려왔나 하는 생각에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승합차에 올라탑니다지척으로 가까운 오른터거의 오름을 왜 승합차에 오르게 하는지 의아했습니다이윽고 승합차가 이동합니다지척으로 가깝게 느껴졌던 오른터거가 생각보다 멀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습니다몽골은 한국과 날씨가 맑고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시야가 좋습니다따라서 가까이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 가깝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승합차는 초원을 가르고 오른터거로 다가가자, 우리가 멀리 보던 오른터거의 작은 규모는 점점 커져 제주의 산방산만큼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생화의 천국 오른터거

이윽고 우린 오른터거에 도착하여 언덕 위로 오릅니다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시간이 많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꽃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오늘도 6시간을 이동하여 흡수골로 이동해야 하므로 길을 재촉합니다.

시작부터 40도 이상의 급경사가 시작됩니다. 100미터도 못가서 땀에 흠뻑 젖습니다그러나 한국의 여름처럼 습한 날씨가 아니고, 바람이 시원하기 때문에 땀은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립니다잔대, 쑥부쟁이, 시호가 화사한 얼굴로 우리를 반깁니다저도 함께 반갑다는 인사를 던집니다큰꿩의 비름은 자주빛 화사한 인사를 합니다저는 그 인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사진으로 담고야 말았습니다사진을 찍으며 느그적댔더니 일행은 시나브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저도 그들을 따라 재빨리 가파른 언덕 위로 올라섰습니다찰진 바람의 육질이 혀끝으로 맴돌아 상쾌하기 그지 없습니다지리산에서나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는 강활꽃과 산미나리도 우리를 마중하여 기꺼이 인사를 던집니다곰배령과 대덕산은 오른터거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그야말로 오른터거는 야생화의 천국입니다.

저마다 초록 이파리들을 흔들자 바람은 아다지오 음표를 마구 풀어댑니다물싸리는 바람에 흔들리나 그 자태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그런 광경 앞에서 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립니다능선 둘레를 따라 늘씬한 침엽수들이 군락을 이루어 자랍니다침엽수들이 어깨동무를 한 능선을 따라 오르다 산 안쪽을 바라보니 한라산 백록담과 비슷한 담수가 보입니다물론 백록담보다 그 규모는 훨씬 작지만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화구호(火口湖)임이 분명합니다.

오른터거 오르막길에서 본 꽃들

능선길 반을 돌아 화구호 안으로 들어가 호수 바로 앞에서 전경을 바라봅니다물싸리와 물매화가 가득하고 호수 뒤편으로는 침엽수가 가득하여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합니다오늘 흡수골로 가는 일정이 없다면 온종일 오른터거에 머물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에 쫓겨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하산길에는 분홍바늘꽃이 지천입니다바늘꽃은 긴 꽃자루 모양이 바늘과 같아 바늘꽃이라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는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것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오른터거의 분홍바늘꽃은 비슬산의 참꽃과 같이 군락을 이루어 분홍천지입니다분홍바늘꽃은 발심을 했는지 고귀한 자태로 다가와 심장을 털어버립니다.

20분 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담비가 승합차를 세우고 우리를 기다립니다승합차로 다가가자, 담비는 우리의손 안에 붉은 열매를 쥐어줍니다산딸기입니다산딸기를 입안에 넣자 빨간 웃음이 터집니다달달하고 시큼한 알갱이가 입안에서 터지자 새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통통거립니다우린 좀 더 산딸기를 먹기 위해 숲을 뒤져 몇 개의 산딸기를 더 채취하여 흡수골로 떠납니다.


오른터거 오르막 시작점


시호와 오이풀이 가득한 시작점에서 이행현 과장


오른터거 아래를 배경으로(왼편부터 박노철 前 전무님, 정청래 부장, 가이드 한가이, 이행현 과장, 원범진 씨)


드디어 주능선 진입한 필자


침엽수림과 초원의 절묘한 조화


오른터거 정상에서 초원을 배경으로


정상 돌무더기에서


주능선 길에서 만난 야생화


고사목이 주변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오른터거 정상은 화산이 폭발하여 만들어진 화구호(火口湖)가 있다


멋진 구름과 침엽수의 조화, 눈이 멀 지경이다


화구호에는 물매화, 물싸리, 분홍바늘꽃이 장관을 이룬다


백록담엔 접근할 수 없으나, 오른터거 화구호에는 접근이 가능하다


화구호 주변에는 습지를 이루고 그 주변은 침엽수림이 즐비하다


필자도 멋진 광경을 배경으로 폼을 잡아봤다


귀한 층층잔대가 오른터거엔 개망초같이 흔하다


번개맞은 고사목을 배경으로 정창래 부장님


분홍바늘꽃은 군락을 이루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흡수골 가는 길

작업복 차림의 한 노동자가 꽃을 사러 왔다

기름때 묻은 얼굴

당신의 치아에선 공업용 풀 냄새가 난다

 

당신은 코를 벌렁거리며 꽃의 향기를 채집한다

맡아 보고 싶다 당신의 가슴엔

꿈틀꿈틀 아직도 바람이 살고 있는지

언젠가 당신이 들녘에서 세상을 향해

우는 것을 보았다

 

새벽마다 당신을 깨우는 이슬, 혹은 자명종,

혹은 눈물, 혹은 밥, 혹은 마누라,

혹은 혹∙∙∙∙∙∙그래, 혹은 혹

 

계절마다 유행처럼 새 꽃이 이름을 얻어

거리의 한복판을 주름잡지만

작업복 단벌에 지칠 줄 모르는 당신은

대지의 이파리, 몸 전체가 이파리,

생각이 몸이고, 몸이 언어이고, 생각하는 몸이 머리,

아, 골치 아픈 이파리 흔들, 흔들거리다가도 때로는

칼날로 곧추서던 몸

그런 당신이 꽃을 사러 왔다

 

작업복과 작업복이 어깨를 걸고 지나가도

두 번 다시 당신을 불로 잘못 부르지 않겠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언제나

초록인 당신

때로 Fool 취급받기도 하는 당신

그러나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으므로

꽃보다 오래 살아남은 지독한 조연

당신 오늘 꽃을 사 간다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이


이명윤 님의 '풀1'

 

꽃보다 외모가 아름다울 수는 없더라도, 함께 하는 여행길에 우리는 동행자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승합차에서 좀 더 좋은 자리를 양보하며, 식탁에서 더 안락한 자리를 사양하며, 산행길에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며, 더 맛있는 안주 접시를 상대가 앉은 자리 앞으로 밀며 권하기도 합니다재미가 없는 유머에 크게 반응해주며, 상냥한 미소를 던지고, 자신을 낮춰 상대를 즐겁게 합니다그런 사람에게서 꽃보다 진한 향기가 납니다우리는 정작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러 몽골로 여행을 떠났지만, 정작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승합차에서는 다시 음악이 울립니다빅토르 최가 락 사운드에 거친 음색을 토해냅니다수평선 너머까지 도로가 펼쳐지고 승합차는 얼레에 풀린 연처럼 하늘을 나는 듯 합니다도로는 거칠어 여러 틈이 벌어졌지만, 승합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립니다물결 같은 오르내림을 반복한 승합차는 드디어 무릉에 도착합니다무릉은 흡수골로 가는 마지막 도시로서, 일반적으로 울란바토르에서 무릉으로 비행기로 이동 후 흡수골로 버스를 타고 갑니다그러므로 무릉은 흡수골로 가는 정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릉에서 요거트, 보드카, 그리고 과일을 구입한 후 흡수골로 향합니다. 1시간 가량 흡수골 방향으로 가다 보니 도로는 끊기고 자갈로 덮힌 임도길로 이동합니다임도길이 거미줄 같이 얽혀 도저히 길을 수가 없었지만 운전사 담비는 태연하게 길을 찾아 운전을 합니다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이윽고 1800미터 고도의 고개에 다다르니 관광객들이 순록과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순록은 강아지처럼 목줄에 메여 있고, 리트리버처럼 순하게 서서 사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우리도 순록을 안고 사진을 찍고 다시 흡수골로 향합니다승합차는 오후 5시를 가르며 미끈하게 고개를 넘습니다.

 

흡수골로 향하는 끝없이 펼쳐진 도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산맥


갈라진 도로위로 펼쳐진 자유


강아지처럼 목줄에 메여진 순록


순록과 함께 기념샷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