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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추자도

아침식사는 전복죽이 나왔다.  어제 짬뽕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속이 느글거려서 아침이나 떠먹을 수나 있을까 했지만, 죽을 먹고 나니 한결 속이 가벼워졌다.  전복죽도 해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카메라를 덜렁덜렁 메고 하추자도를 향해 걸었다.  상추자도에서 유일하게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네 잔 사서 나눠 마시며 걷는다.  속이 제법 차분해지고 기분이 상쾌하다.  도시에서 과음 후의 출근길이라면 이런 기분은 절대 들지 않을 것이다.

추자대교를 건너 언덕길로 바로 들어서자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차진 햇살을 머금은 바다가 눈이 부시다.  다시 언덕길을 내려와 묵리교차로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제법 꼬장꼬장한 성격을 가진 개들이 짖는다.  그러면서도 연신 꼬리를 흔든다.  놀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도시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는 광경은 정겹고 새롭다.


추자대교를 건너면 하추자도 올레길 시작

 


언덕을 오르면 추자대교 너머 어제 걸었던 상추자도 등대가 보인다.

 


언덕을 내려서면 다시 임도길을 지나고


다시 언덕을 들어서면 가거도 독실산에서 보던 이국적인 원시림 느낌의 숲을 걷게 된다.  이런 원시림에 벤치도 사려깊게 잘 설치되어 있다.  숲에 들어서자 우리는 숲이 된다.  초록빛 온기 안에서 우리도 초록의 꿈을 꾼다.   다시 언덕길을 내려서 신양항으로 들어선다.  제법 아름다운 등대가 보인다.  아직 불빛을 쏘고 있지 않지만 빛나는 듯 했다.  어제 먹을 술 탓에 신양항 세븐일레븐에 들러 숙취해소 드링크를 한입에 털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일행들은 이미 멀찍이 사라져 버렸다.  80년대와 같은 간판들만 즐비한 추자도에 세븐일레븐 간판은 낯설기만 하다.  에베레스트 루클라에서 보던 뚱바 집과 나란히 하던 스타벅스의 느낌과 같다.  추자도도 개발이 된다면 더 많은 프렌차이즈가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나면 지금과 같은 추자도의 느낌은 아닐 듯싶었다.

 

마을을 지나 바다 억새길에서 바라본 섬과 바다는 흐린 날씨와 더불어 센티멘탈해지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억새길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숲으로 들어선다.

 


하추자도 천혜의 자연을 가진 원시림



환상적인 추자도 해안 올레길

  

 

흐린 날씨의 추자도 등대

 

마을을 지나 모진이 몽돌해안길로 들어선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오락가락하던 보슬비는 금새 바다에 흡수되어 파도와 같이 찰랑거린다.  바위에 허물어진들 부러지지 않는다.  다시 온전한 몸체가 되어 찰랑거린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자유이며 해탈이다.

예초포구에 도착하여 한 마을주민에게 길가에 나란히 담은 통에 삭히고 있는 것이 무어냐고 물어봤더니, 멸치액젓이라고 한다.  추자도 마을 사람들은 모든 반찬을 멸치액젓으로 간을 한다.  멸치액젓은 주로 3년 이상 삭혀야 하며 질이 좋아 육지 사람들이 많이 사다 먹는다고 한다. 예초포구 마을에서 장승을 지나 산위로 급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돈대산 정상(164m)에 도착한다.  돈대산 정상에서는 하추자도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돈대산 정상에서 담수장길로 내려오면 굴비 조각상이 나타난다.  추자도는 굴비가 법성포 못지 않게 질이 좋다고 한다.  굴비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추자대교에 도착하면 오늘의 트레킹을 마감하게 된다.

 

돈대산 정상 가는길, 가로등도 설치되어 있다



드디어 돈대산 정상, 164m로 꼬부랑 할머니 조차 갈 수 있다.

 


돈대산 정상에서는 멀리 상추자도 추자항도 보인다.

 


손에 잡힐 듯 낮게 깔린 먹구름 아래 잔잔한 바다와 해송 몇 그루


마루금을 걷는 방식과 올레길을 걷는 방식은 다르다.  천천히 나에게 대화를 하며, 동시에 일행들과도 대화를 하며 걷는다. 

내게 던지는 질문에 꼭 정답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사는 방식이 특별히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올레길을 걷는 것은 조여진 고무줄바지 같은 답답함을 떠나 나를 헐겁게 하는 방식으론 제격이다.  

속수무책으로 내가 무너져 내릴 때,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바다가 너울대는 섬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