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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산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중대봉은 그 연이 닿지 않았다.  꼭 중대봉 산행을 기획한 날엔 주말 근무가 급작스럽게 생기거나, 심지어 중대봉을 가던 버스 안에서 호출로 인해 사무실로 되돌아간 적도 있었다. 이렇듯 연이 닿기 어려웠던 중대봉을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 괴산의 명산을 꼭꼭 간직해 두었다가 꺼내 보는 보물을 만나듯이 기쁜 마음으로 농바위 마을로 이동을 했다.  오늘은 지맥팀 선두에서 항상 길을 뚫어주시는 유석님과 삼은님, 그리고 백운호숫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근래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신 송주님과 함께 하였다.  모두 산행 속도가 나보다 현저히 빠른데다가, 산행중 사진을 잘 찍지 않으시는 분들이라 그 분들의 박자에 맞춰 산행을 할 생각을 하니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조건 오늘의 산행 테마는 포르티시시모(Fortississimo)[각주:1], “달려달려산행이리라.  

중대봉은 급경사 대슬랩 바위길을 걷기 위해 릿지 산꾼들이 다녀가는 코스로, 곰바위, 대슬랩을 거쳐 중대봉만 산행하거나, 아니면 대야산을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그러나, 좀 더 상급의들인 우리들은 밀재를 거쳐 둔덕산을 지나 대야산 휴양림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농바위 마을은 삼송3리 마을회관 주차장에 차를 두고 계곡길을 따라 이동한다.  계곡길을 따라 가다 계곡을 가로지르면 계속해서 밀재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길의 첫 번째 왼쪽 갈림길로 오르면 곰바위를 거치지 않아, 재미가 반감된다.  따라서 한번 참고 두 번째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이동하면 곰바위 바윗길을 따라 중대봉을 오르게 된다.  

농바위 마을에서 밀재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돌아 100미터도 못 가서 급경사 바윗길이 시작된다.  직벽에 가까운 오르막은 밧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은 릿지를 하며 올라간다.  체력이 좋은 송주님과 유석님은 가뿐한 발놀림으로 50미터 이상 앞서가 버리고, 삼은 님은 내 뒤를 봐주며 올라선다.  우리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곰바위에 올라선다.  시야는 탁 트여 속리산군과, 월악산군이 조망된다.  탁 트인 조망과 어우러진 암릉과 소나무는 괴산 산세의 특징이다.  높지는 않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마루금이라 그만큼 재미는 쏠쏠하다.  곰바위에서 제대로 된 사진도 못 찍은 오늘의 폭탄[각주:2]은 고수 산꾼들을 따라 중대봉으로 향한다.  암릉 곳곳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뒤틀린 자태를 보면, 어찌나 그 역경의 사연들이 절절이 느껴지는지 멍하니 소나무와 눈을 마주하곤 한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리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켜버렸다.

중간생략 –

흉터가 더 푸르다

우레를 꿀꺽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툭 불거져나와 구불구불한

저 소나무는

조용미의 '소나무' 中에서

우리가 마루금을 걷는 이유는 꼭 좋은 경치를 보고 귀한 음식을 맛보며 체력을 증진하기 위한 여행은 아니다.  우린 마루금 길에서 멋진 암릉과 구름, 바람, 나무, , 사람들을 만나며 부족한 것을 채우고, 복잡한 것을 비우며 사색을 한다. 숭엄한 존재에 대해 존경을 하게 되고, 마루금의 힘든 고행길을 지나며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다.  특히나 험한 바위 틈을 비집고 뒤틀려 자라는 소나무는 아파트 정원에서 자라는 곧은 소나무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감흥을 준다. 

농바위 계곡을 건너 두번째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 급경사로 시작한다.

내려다본 농바위골,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대야산(상대봉)까지는 밧줄 경사구간과, 밧줄아닌 경사구간으로 나뉜다. 평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암릉을 비집고 생명력을 발휘하는 소나무, 중앙에 보이는 것은 대야산 정상

멀리 보이는 마루금은 속리산

밧줄이 있는 곳은 밧줄을 붙잡고, 그렇지 않은 구간은 프리 솔로(Free Solo)[각주:3]  방식으로 산을 오른다.  북한산 원효슬랩이나 불암산 영신슬랩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낮아, 어느 정도 슬랩 산행에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라고 볼 수 있다.  밧줄구간과 프리솔로 구간을 서너번 번갈아 산행하다 보면 어느 새 곰바위에 도착한다.  곰바위에서는 속리산 구간과 백악산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잠시 땀을 식히려 바위에 올라 능선길을 바라보니 3명의 고수 산꾼들은 어느 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중대봉 길을 가다 보면 약 50m의 대슬랩 구간이 나오는데, 이 구간은 중대봉의 백미이다. 경사는 가파르지만, 바위 접지력이 좋아 밧줄을 잡고 쉽게 올라설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이라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대슬랩을 지나 숨을 고르며, 암릉길을 오르면 바로 중대봉에 도착한다.  우리는 중대봉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대야산으로 향한다. 

로프 없이 프리솔로로 산행중인 삼은님

곰바위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유석님

왼쪽 정상은 중대봉, 오른쪽 정상은 상대봉(대야산 정상)

곰바위 정상에서 삼은님

중대봉을 오르는 마지막 대슬랩구간. 경사는 후덜덜하나 바위 접지력이 좋아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다.

중대봉(846m) 정상

중대봉 정상에서 대야산은 지척으로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중대봉에서 대야산으로 오르는 구간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암릉길은 시야가 탁 트여 군자산군, 희양산군, 속리산군, 장성봉부터 악휘봉까지 지나는 모든 암릉군 등을 볼 수 있다.  까다로운 밧줄구간을 몇 개 지나면 드디어 대야산 정상에 도착한다. 

대야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뒤돌아 본 중대봉 정상

대야산으로 가는 암릉길에 유석님

암릉위의 소나무는 내 시야를 쏙 빼앗고...가운데 뾰족한 봉우리는 조항산, 그 뒤는 청화산, 오른쪽 능선은 속리산 능선

대야산을 오르는 마지막 구간에서 송주님... 얼굴이 타지 않게 하려고, 코카 스패니얼(?) 패션을 선보임

대야산 정상에서 각자 한 컷(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은님, 유석님, 필자, 송주님)

대야산은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구간이다.  겨울에 얼어있는 대야산 암릉길을 지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대야산 정상에서 버리기미재로 향하는 70미터 직벽 밧줄구간을 탈 때 온몸에 너무 힘을 줘서 밧줄 구간을 내려오자마자 똥을 쌌는데, 똥 색깔이 회색에 가까운 하얀 색이었다. 같은 일행 사람들이 그걸생똥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생똥을 싼 구간이다.  대야산 정상에서 밀재를 지나 845봉을 지나는 코스는 백두대간 코스로 날이 밝기 전 이른 새벽에 지나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능선을 보니 꽤 험한 구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암릉 길을 지나, 밀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꽤 험한데, 산에 계단을 만들 재료들을 수북이 쌓아두었다.  앞으로 대야산 구간도 계단을 많이 설치하게 되면 묘봉, 상학봉, 미인봉, 월악산처럼 재미있던 산행지의 재미가 반감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재로 향하는 암릉구간, 앞에 보이는 능선길은 둔덕산 구간으로 능선 왼쪽부터 우측 능선으로 이동해야 한다.

밀재 가는 길에 되돌아본 대야산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드디어 밀재에 도착하고, 다시 849봉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치자 선배 고수들의 속도를 못이겨 왼쪽 복숭아 뼈 위로 쥐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뒤에서는 송주님이 저를 이끌고 849봉에서 내려와 다시 867봉으로 향한다.  가파른 암릉 산행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코스였기 때문에 스틱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선배들이 모두 스틱 없이 산행하겠다고 해서 스틱을 차에 두고 와 사단이 난 듯싶었다.  두 다리가 55kg 정도를 지탱하면서 걷는 것과 75kg를 지탱하며 걷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867봉에 올라 계속해서 남쪽으로 직진을 하게 되면 고모치를 지나 조항산으로 가는 길이다.  둔덕산으로 가려면 반드시 동쪽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가야 할미마귀통시바위를 만날 수 있다.  우리 고수 선배들은 GPS 없이도 어찌나 길을 잘 찾는지 혹시나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갈림길에서 나를 기다려준다. 867봉에서 신발 끈을 고쳐 멘다.  물론 쥐가 나서 하산할까 하는 마음도 고쳐 멘다.   867봉에서 할미마귀통시바위로 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거의 까치발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드디어 할미마귀통시바위를 보게 된다.  굉장히 큰 바위조각으로 이루어진 할미마귀통시바위는 할미마귀가 똥을 싸는 바위라고 한다.  통시라는 단어는 화장실이란 의미이며, 할미마귀는마고할미가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마고할미는 지모신(地母神)으로한민족의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둔덕산은 한민족의 창조와 연관된 전설이 있는 영험한 산이라 볼 수 있다. 

할미마귀통시바위 측면에서 찍은 사진...선배들의 속도에 못이겨 암릉 위에 올라가서 예쁜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나마 지나가면서 가장 시야가 좋은 곳에서 찍은 할미마귀통시바위

손녀마귀통시바위를 지나면, 암릉 능선이 덜한 대신 나무에 가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조금은 지루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오르막을 탈 때마다 계속해서 쥐가 내려서 부러진 나무를 주워 스틱으로 삼아 걸으니, 쥐가 내리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대야산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500미터 오르막길을 더 오르면 드디어 둔덕산에 도착하게 된다.  삼은님이 계속 북진하여 화양계곡으로 내려가자고 했으나, 저는 더 이상은 못 가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형들은 제일 어린 것이 저질체력이라며 놀려먹으면서도 내 의견을 존중하여 대야산 휴양림으로 하산, 대야산 용추계곡 알탕[각주:4]으로 오늘의 산행을 매조지한다. 

둔덕산 정상에서 송주님, 필자(筆者), 유석님, 우측 흰 암릉이 보이는 산은 희양산



 

  1. 가장 세게(빠르게)라는 의미로 난이도 높은 산행을 빨리 걷는 것과 견주어 비유함 [본문으로]
  2. 일행에 비해 현저하게 산행 속도가 느린 사람을 일컫는 은어 [본문으로]
  3. 로프 없이 혼자의 힘으로 등반하는 경우를 말함 [본문으로]
  4. 계곡에서 목욕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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