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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반짝’하고 사라질 일상의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글과 사진으로 메모한 것들을 틈날 때마다 그렸고, 그 일 년 반 동안의 기록이 전시회를 통해 공개됐다. 역량혁신팀 류가람 차장, 아니 류가람 작가의 ‘아빠의 그림일기’ 전시회를 찾았다.
영등포 여성미래센터 허스토리홀, 150여 점의 작품 중에서 고르고 고른 42점이 걸렸다. 보통은 작품을 유리 액자에 끼워서 전시하지만 류가람 차장은 캔버스 위에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림의 질감을 살리고 관람객과 그림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배려다. 만년필로 그린 그림 특성상 아주 작은 물방울로도 작품이 손상될 수 있기에 투명 래커를 뿌리고 말리는 과정을 거쳤다. 손수 펜으로 적은 작품 설명도 그림과 잘 어울린다.
“6개월 전쯤 아는 분이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그림을 보시고는 전시회를 제안하셨어요. 뜻밖이었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고요. 그러는 사이 전시회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심지어 전시회가 열리고 나서도 한동안 어리둥절했어요. 저나 가족이 느꼈던 감동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다행히 저만의 걱정이었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셔서 의미가 큰 시간이에요.”
주로 퇴근 후나 주말에 그림을 그렸다는 류가람 차장.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작업시간은 대부분 밤이었다. 메모해놓은 소재들을 순차적으로 그려나갔다.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지만 언제나 꼼꼼하게 정성을 다했다. 주로 대여섯 개의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책상에 굴러다니는 플러스펜으로도 그리곤 했다. 그는 자그마한 스케치북을 사용한다. 갖고 다니기 편하고 좁은 테이블 위에서도 그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전시해놓은 스케치북 두 권을 펼쳐 보니 그야말로 아빠의 ‘그림’ 일기로 풍성했다. 드문드문 여행 티켓도 붙어 있고 여행 코스나 간단한 메모도 기록돼 있었다.
“그림에 몰입하는 동안은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됐고 더 많이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회사 일 하나하나도 그 의미를 되짚어보려 하고요. 그래서인지 좀 더 꼼꼼해졌어요. 그렇다고 그림을 무리해서 그리지는 않아요. 먼저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피곤해지면 쉬어요. 그런 다음 그림을 그리죠. 그래야 작품도 예쁘게 나오거든요.”
일상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싶다
딱히 미술에 소질이 있지는 않았다. 어릴 적 친구들 사이에서 ‘태권V’를 좀 잘 그리는 녀석 정도였을 뿐이다. 일상 그림을 시작하게 해준 <철들고 그림 그리다>와 같은 책들을 보고 따라 그리며 혼자 연습한 결과다. 류가람 차장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그리고자 한다. 그가 살고 있는 지금, 삶의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까닭이다.
“늘 아이들이 깨기 전에 출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제가 면도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출근을 조금 늦게 하는 날이었어요. 욕실에서 면도를 하고 있는데 첫째 가은이는 양치를 하면서, 둘째 강희는 볼일을 보면서 제게 눈을 떼지 못하는 거예요. 신기했나 봐요. 그때의 재미있는 감정이 <아빠 뭐 해요?>라는 그림에 담겨 있어요. 사진으로는 남기기도 힘들고 한계도 있는 빛나는 순간이었어요.”
일상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다. 그 순간을 스케치북에 담으니 그림은 다시 오늘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가 그린 <무교동연가> 시리즈 중엔 1년간 함께 근무했던 팀원들의 캐릭터를 묘사한 작품이 있다. 등장한 구성원들에게 큰 감동을 준 작품으로, ‘왜 나는 그려주지 않은 거예요?’라고 항의하는 구성원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즐거웠던 1년여의 시간은 그림이 돼 다시 일상의 행복으로 돌아왔다. 기쁨과 즐거움이 되풀이되며 풍성해지는 순간이다.
“한 가지 바람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림 그리는 구성원끼리 모임을 만들면 어떨까 해요. 그림을 그리며 회사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류가람 차장의 그림에는 사람이 있다. 가족이 있고, 동료가 있고, 친구가 있다. 으레 오래된 앨범을 펼치며 추억을 들춰 보지만, 류 차장은 수북한 그림일기를 넘기며 세세한 감정의 결까지 다시 느낀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회 ‘아빠의 그림일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여러 갈래의 물결을 일렁이게 한다. 가족을 향한 세심한 사랑과 삶을 대하는 설렘이 그림 곳곳에 스며들어 보는 이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들어놓는다.
♣ 글 : 송미연 사진 : 손준석
♣ 츨처 : SK 주식회사 C&C 사보 'Create & Challenge'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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