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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몸을 이끌고
2015년 5월 25일 월요일, 석가탄신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어제 화대종주로 인해 지친 몸상태를 체크했으나, 별 이상이 없었다. 오늘은 무식하게도 산오름 회원들과 설악 서북능선을 함께하기로 한 날, 간단히 짐을 챙기고 잠실역 8번 출구로 향했다. 오늘은 미투리 산악회 최효범 대장님과 함께 상투바위골을 지나 서북능선길을 걸어 장수대로 향하는 등산코스를 안내받기로 했다. 잠실역에서 민경재 부장님과 김태용 과장을 만나 산악회 버스에 승차하였고, 바로 복정역에서 이행현 과장과 범진씨가 탑승하였다.
버스는 장수대를 지나 한계령을 못 미쳐 도착하였고, 상투바위골 계곡 입구 들머리를 통해 산행을 시작하였다. 계곡은 가뭄으로 인해 바싹 말랐고, 날씨는 더워 오늘이 힘든 산행임을 예감하였다.
미투리 산악회
인터넷 산악 동호회가 활성화 되기 전, 산행을 안내하여 인도하는 산악회라 해서 이른바 “안내산악회”가 수입으로서 꽤 짭짤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을 어설프게 아는 운영자 또는 산을 모르고 동호회 회원들을 돈으로 아는 산악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나서 산악 동호회는 그 상도가 깨지기 시작했다. 산을 어설프게 아는 운영자는 길을 모르거나, 암릉의 자일을 잘못 달아놔 산악사고가 다발로 발생하였고, 회원을 돈으로 아는 동호회는 싼 가격에 만차를 이루어 놓고, 산행시 제한된 시간까지 내려오지 않으면 출발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정작 본인은 산행을 하지 않은 채 차 안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면 출발하는 산악회도 있었다. 동호회 회원들은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어 길을 몰라 알바(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며 산꾼들이 쓰는 은어)를 해도 당사자의 책임으로 돌린다.
미투리 산악회 최효범 대장님은 다르다. 어떻게 하면 산행을 안전하게 가장 멋진 코스를 안내할지 잘 알고 있으며, 선두부터 후미까지 앞뒤를 아우르며 챙긴다. 물론 박식한 산행지식과, 등반기술, 그리고 선두부터 후미까지 챙길 수 있는 체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그래서 나는 지금의 안내산악회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며, 그 산악회는 당연히 미투리산악회라 말하고 싶다.
험난한 계곡길
상투바위골의 계곡은 큰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길로 시작한다. 이후 너덜과 흙길을 번갈아 걷다 보니 절벽아래로 폭포가 있다. 대승폭포나, 독주폭포처럼 큰 폭포는 아니나, 날쌘 비룡과 같이 늘씬하다. 대장님은 폭포 우측으로 자일을 달아 40여명의 회원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선 여성회원들이 모두 오른 후, 남성회원들이 모두 올라선 후에야 그룹을 한데 추려 다시 산행길을 나선다. 다시 작은 폭포를 한번 더 만나 짧은 자일을 타고 올라선 후에야 비로소 급경사 오르막길을 탄다. 등산로 좌우측으로 곰취와 참취가 한창이지만, 나물체취 금지라서 수확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쉴 틈도 없는 가파른 오르막길에 어제 피로가 누적되어, 산오름 회원중 제일 꼴찌로 주능선까지 황소 호흡을 하며 올라선다.
상투바위골 폭포 앞에서 민경재 부장님
처음 타는 자일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급으로 암벽을 오르는 이행현 과장
상투바위골은 너덜길이어도 아름답다.
표현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나의 언어능력, 설악산 서북능선
주능선에 다다르자,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일행들에 껴서 가져온 샐러드와 과일을 나누어 먹고 서북능선 주능선 길로 향했다. 일행중 13명은 반대편 한계령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기서 한계령까지는 약 10번의 잘잘한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고개를 오를 때마다 만나는 멋진 암릉에 소름이 돋는다. 뒤를 돌아보면 귀때기청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설악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용아장성의 일부가 보인다. 용아장성 뒤로 멀리 공룡능선길이 뻗어 황철봉에 다다른다. 황철봉 너머에는 북설악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귀때기청봉 우측으로는 멀리 점봉산이 보인다. 서북능선길 좌측으로는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이 나란히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모두가 모여 비로소 설악산이다. 일부라도 빠진다면 설악산의 명성은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행현 과장과 범진씨는 설악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들은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파노라마 같은 조망에 감탄사를 연이어 내지른다. 나는 설악의 evangelist가 된 것 같아 한껏 우쭐해진다.
설악 서북능선 주능선 초입에서 이행현과장, 원범진씨, 그리고 미투리 대장 최효범님
되돌아본 귀때기청봉. 황철봉 못지 않은 너덜길이다.
1408봉 오르기 전 오색방향을 되돌아 본 경관
귀때기청봉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우리는 1408봉을 향해 간다. 우측으로 큰 감투봉이 시야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마루금 길 위로 안산이 눈 앞으로 펼쳐진다. 우측으로 기이하게 자리잡은 바위들은 꼭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풍성한 나무이건 앙상한 나목이건 설악에 있어 모두 아름답다. 이름모를 야생화를 알아가는 맛도 쏠쏠하다. 요즘 2만원짜리 애생화 도감을 사서 산행시마다 모르는 꽃을 찾아본다. 설악 서북능선에는 큰앵초, 당조팝나무, 산솜다리, 산괴불주머니를 찾아 대조해보고, 외워본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처럼 그들에게 이름을 불러준다.
드디어 1408봉에 도착, 산우들은 멋진 조망에 비명을 지른다. 난 너무나 힘들어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최효범 대장님은 좁고 뾰족한 봉우리로 올라와 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손사래를 쳤다. 나머지 산오름 회원들은 좁은 봉우리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이제 두어 봉우리만 넘으면 대승령에 당도할 터, 더욱 힘을 내어 1289봉으로 향한다.
대령승령까지 멈추지 않고 걸으려던 나의 고집은,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과, 한다발 몸짓으로 하늘거리는 야생화와, 우후죽순 솟아나 있는 첨봉의 광경으로 인해 여지없이 꺾여버린다. 난 그대로 굴복하여 가만히 서있다. 하늘거리는 바람은 모르핀을 맞은 사람처럼 나를 몽환속으로 이끌어 설악의 광경 속에 중독되고 만다.
어느덧 대승령에 당도하여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하려고 하니, 최효범 대장님은 후미까지 챙겨서 내려온다고 먼저 하산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대승폭포(가뭄이 들어 대승폭포에는 볼 것이 별로 없었다.)에 들러 구경을 한 후 장수대로 하산하여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수많은 첨봉들과 함께한 범진씨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첨봉들
서북능선 마루금 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서 민경재 부장님
마루금 뒤에 멀리 안산이 보이고
붉은색 큰앵초
노란색 산괴불주머니
1408봉 지나 첨봉 위에서 단체샷(출처 : http://cafe.daum.net/miturymountain/)
대승령 단체샷(출처 : http://cafe.daum.net/miturymountain/)
미투리 최효범 대장님과 단체샷(출처 : http://cafe.daum.net/mitury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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