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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C&C 선양분공사는 매우 젊은 조직이다. 법인을 설립한지 4년이 지났을 아니라, 대학을 방금 졸업한 인력들이 대부분인지라 직원들의 평균연령도 20 중반에 불과하다. 대신 아주 어린 나이에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서인지 그들의 결혼적령기는 한국보다 훨씬 빠르다. 20 중반에 아이를 가진 남자 직원들도 가끔 있고, 여자 직원들의 출산휴가도 띄엄띄엄 있는 편이다. 특히 30세를 넘겨서 결혼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한다. 끓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우리 회사에서도 주말마다 청첩장이 돌고 도는데, 때마침 오래 전부터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알게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초대받게 되었다. 권병섭

 

중국에서도 온라인 청첩장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선배 혹은 상사에게는 이처럼 자필로 초대장을 반드시 전해야 하는 전통이 남아있었다. 초대장이야말로 받는 순간, 참석하지 않을 없게 만드는 마력의 아주 매력적인 도구이다. WeChat 같은 SNS 통해 초대장을 받는 것보다 이걸 전달해 준다는 핑계로 직접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있으니 결국 일석이조가 아닐까? 물론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쪼개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

좌측부터 청첩장 봉투와 신랑이 직접 작성한 초대장, 축의금 봉투! 중국인들의 Red 사랑은 각별하다


⊙ 축의금

하지만 초대장을 받는 순간부터 고민이 하나 생겼다. ‘도대체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건지? 중국에서의 결혼식도 처음이라 들은 내용도 없고, 주변에 상의할 사람도 마땅치 않고~ 서로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기분 좋게 만드는 금액은 과연 얼마일까?’ 하루 이틀 고민했지만 혼자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근무하시는 부장님도 청첩장을 받고 고민하고 있었기에 다행히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서로 상의할 수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중국에서도 터무니없이 부풀어진 축의금 액수 때문에 젊은이들의 고민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냥 아는 사이면 2~300 RMB (3~5만원) 정도가 적정하지만, 어색한 인사라도 하고 지내는 사이면 500 RMB (9만원) 부터 시작해야 한다. 같이 일을 했거나 조금 친한 사이면 1,000 RMB (18만원) 까지 축의금 액수가 올라가기도 한단다. 

여기서 정말 친한 사이면 2~3,000 RMB (3~50만원) 까지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결혼식 1~2번 참석하고 나면 용돈의 대부분이 증발하는 상황까지 맞이할 수 있다. 그래도 미혼인 경우에는 본인의 결혼식 생각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비싼 축의금을 감내하기도 한다. 한국보다 훨씬 통 큰 축의금 문화에 조금 놀랐다. 축의금에도 중국인들 특유의 허풍과 드센 자존심 돋보이기 문화가 스며든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나 또한 결혼식을 간접적으로 축하하는 메시지로 888 RMB (중국에서 8은 행운 의미하는 숫자) 을 축의금으로 낼까도 생각했지만 받는 사람조차 부담될 것 같아서 그냥 아는 사이로 최종입장을 정리했다. ^^

⊙ 중국 내 다른 민족간의 결혼식

조선족이 많은 우리 회사에서는 조선족 남자 직원들이 조선족 여자 직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다. 조선족 부모님들이 며느리만큼은 같은 민족을 원하기 때문이다. 센 자존심 때문에 유명한 한족 며느리가 자칫 아들에게 힘든 결혼생활을 안겨줄까 걱정하는 마음에 고분하고 지순한 조선족 며느리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아는 조선족 남자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조선족 여자를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선족 여자 직원들은 인기가 오를 수 밖에~ 조선족 남자들이 기를 쓰고 찾을 뿐더러 한족 남자들은 요리와 살림을 떠맡아 하기에 여자 분들에게 인기가 많다

조선족 남자가 한족 여자를 데리고 부모에게 인사를 시키러 갔다가 실패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 부모님의 승낙을 무사히 통과했는지?) 이번 결혼식은 조선족 남자와 한족 여자였다. ^^ 

결혼식 몇 주 전에 신랑이 마련한 사석에서 신부를 만났는데 비록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드세다거나 거만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부모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셨는지도 모르겠다. 


⊙ 결혼식 준비

신랑의 결혼준비를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중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것도 한국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Wedding 업체가 성행인데 이 중국인 친구가 한국에서처럼 이벤트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사회자 섭외, 결혼식장 장식, 식순 준비 등을 일체 맡겨버렸다. 결혼식장 예약과 신혼여행에 대한 부분만 신랑신부가 챙기면 되니 편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맞벌이가 늘어나는 바쁜 중국인들의 요즘 생활상을 비춰본다면 이런 업체들이 더욱 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결혼식

중국에서 결혼식은 보통 오전에 한다. 오전은 초혼, 오후에 하는 결혼식은 재혼 혹은 황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직원들의 청첩장을 볼 때마다 오전 11 58, 오전 10 58분 이라는 시작시간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결혼식이 오후 4 58분이라서 신랑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신랑은 초혼인데도 불구하고 결혼식장을 구하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오후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랑, 신부는 결혼식 당일 각자의 본가에 들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과 함께 집을 나서서 신혼집으로 향한다. 신혼집을 둘러보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서야 결혼식장으로 향하는데 주말의 복잡한 교통상황에서 이러한 사전의식을 거행하느라 결혼식 시작이 30분을 훨씬 지나버렸다. 대신 자칫 지루해질 하객들을 위해 신랑과 신부가 준비한 것들이 있다. 식장에서 내어주는 떡 사이로 보이는 담배와 술! 신부의 부모가 양조장을 경영하신다고 듣긴 했지만 결혼식 시작도 전에 고량주가 식탁에 놓여있는 상황은 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한 잔씩 한 잔씩 서로 권하면서 하객들의 축하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결국 고량주를 거하게 마신 하객들은 결혼식 종료 후, 축하 밴드의 공연에 어깨춤을 들썩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혼식 장소는 西塔 의 유명한 북한식당 모란관! 정갈한 북한 음식과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미모의 북한 아가씨들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평양관 냉면을 먹은 이후로 처음 가보는 북한식당에 기대가 컸다. 아니나 다를까!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에 맛까지 일품! 물과 차를 따라주며 음식을 가져다 주는 북한 여자분들의 세심한 서비스에 감탄하는 찰나, 각종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고운 목소리의 노래를 듣노라니축제의 현장이 따로 없구나!’ 라는 감탄과 함께 결혼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약식으로 진행되는 대부분의 한국 결혼식에 비해 조금 많은 중국의 결혼식 식순은 다음과 같다. 1차와 2차로 나눠지는데 1차가 신랑, 신부의 혼인서약, 2차는 사진촬영 및 공연으로 이뤄져 있다.

▣ 1차 식순

       개식선언

       양가모친 촛불점화

       신랑입장

       신부입장 – 신랑이 단상입구까지 모시러 나감

       언약

       내빈축사 – 총경리 (중국어로 유창하게 진행해서 우리 직원들 모두가 놀랐다.)

       예물교환

       내빈께 인사

       부모에게 큰절

       퀴즈

       맞절

       신랑신부 축사

       신랑답사

       샴페인 건배

       신랑신부양가부모 동시퇴장

       식사 시작 (1~15 차 준비) 

 

▣ 2차 식순

양가부모친지동료 사진촬영

공연 (북한식당 – 모란관)

2차 이후에도 비공식적 행사가 있다신랑신부가 하객을 위해 미리 결혼식장 근처의 노래방을 예약하고 술과 안주를 들여보내준다비공식적인 행사인 3차 이후는 하객들 스스로 술을 마시며 오랜만의 모임을 자축한다고 한다중국인들의 과거풍습에는 결혼식과 함께 3일동안의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3, 4차로 이어지는 요즘 젊은이들의 실태가 결코 과한 음주문화는 아닌 것 같다. 

중국에서 열린 조선족과 한족의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좀더 진지하게 들어보고그들의 일상적인 문화를 보다 깊이 있게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이와 같은 생각과 경험을 축적하고 공유하고 또한 이해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라고 생각한다필자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