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발달하기 이전 하천은 삶의 터전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들에겐 좋은 놀이터였고, 논 밭엔 곡식이 잘 자라게 해 주는 자양분이었으며, 어머니들에겐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하천은 오염되고 더 이상 삶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변해 갔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오늘날 '웰빙과 힐링'이라는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천은 다시 도시 개발의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청정한 도시를 만들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도시들은 다시 하천을 복구하기 시작했고, 하천 주변에 각종 편의 시설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하천의 모습은 과거에 삶이 투영된 정감어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적한 듯 무심히 흐르는 개울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모습처럼 맑고 순수할 뿐이다.

무심천 기행에 앞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무심천(無心川)’은 청주를 동과 서로 가르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며, 월운천, 영운천(潁雲川), 명암천, 율량천, 발산천 등의 작은 내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무심천(無心川) 동쪽에 우뚝 선 '우암산(牛岩山, 338m)'과 함께 청주를 대표하는 자연물이며,  무심천(無心川)에는 무심천(無心川)이라는 지명 이외에도대교천(大橋川)’, ‘심수(沁水)’, ‘심천(沁川)’ 등의 여러 명칭이 결부되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대교천이라는 명칭으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 명칭이 무심천이라는 명칭이 붙기까지의 최초의 공식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무심천 발원지인 가덕면 내암리에 생태체험나온 초등학교 학생들.

무심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무성(武城)뚝 안으로 흐르는 심천(沁川)'이라는 의미의무심천(武沁川)’이 변한 것이라는 설과 불교용어무심(無心)’에서 왔다는 설 등 아주 다양했다. 하지만 불교용어무심’에서 왔다는 설이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이 설은 무심천(無心川) 하류(지금의 운천동 지역)에 사찰이 많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는 듯 보였다. 자료를 보면 이 지역은 한때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곳이라 했다. 

무심천의 첫인상은 왠지 시인이 나타나 숲의 향기를 즐기다 시 한 수 읇고 떠나는 곳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작은 하천이 청주의 젖줄로 이어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섣부른 의심은 금물이라 생각하고 좀 더 하천을 살펴보았다. 깊은 내천을 이루고 있진 않았지만 오밀조밀하게 숲과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곳은 계곡수원보호구역으로 생태체험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 했다.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고은교 주변 들녁이었다.  무심천은 단순히 생태계 보존을 위한 하천을 넘어 주변 농부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천을 중심으로 주변에 농지가 많았으며 실제 무심천이 농업용수로 활용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조용히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왠지 농부의 후원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천은 농업용수로서의 하천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고은교 주변 들녁의 무심천은 아직 순수함이 뭍어 있는 사춘기 소녀같다가도,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당찬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신송교 부근에는 휴식가 더불어 낚시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낚시를 한다는 것은 물고기가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요즘 도심에서는 하천의 청정함을 자랑하기 위해 물고기 방생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떠올라 최진호 리포터에게 물고기를 인의적으로 풀어 놓은 것이냐라고 묻자 무심천은 스스로 진화된 하천이어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순간 실패로 돌아갔다며 물고기 또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했다.

신송교 주변에 노란 원피스를 입은 무심천을 보았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유지하도록 돕다가도, 누군가에겐 세월을 되집어보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도시에 코앞이지만 난 아직 무심천이라는 자연 앞에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다.

장평교 부근을 지날 때 무심천에서 수달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건 시끄러운 곳에 살 수 없는 수달이 교통량이 많고 도심에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무심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때만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무심천을 찾고, 와서 즐기리라는 기대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천이 복원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하천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청정 생태하천으로의 복원 작업에 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달이 나온 곳으로 유명한 장평교 주변엔 풍성한 수풀로 이루어진 하천의 모습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공간만 있었다. 수달 또한 사람이 그리웠던 것일까? 장평교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무심천 중심부에 자리한 체육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연인, 친구, 가족들이 나와 휴일에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무심천에서 이 체육공원만 봤다면 여느 도시가 갖춘 하천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발원지부터 지금 이곳에 도착해 보니 무심천과 청주 시민의 조화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보존을 위한 노력과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하려는 하천의 모습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심천의 마지막 지점인 미호천(美湖川)과 만나는 합수지점으로 향했다. 

인간은 도시에 살면서 자연을 그리워 한다. 무심천에 낚시줄을 던지며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 도시의 편리함도 결국 자연으로 흘러갔음하는 마음은 아닐까?

사람들의 노력은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무심천의 모습은 아닐것이다. 하천이 가진 자정작용처럼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한다. 그 모습 속에서 사람들을 자신의 역할을 깨달을 뿐이다. 앞으로 점점 변해가는 하천의 모습이 기대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여유롭다. 하천은 그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하길 원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공간인듯 광장은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무심천(無心川)은 청원군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일면 상대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금강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하천이다. 

무심천의 마지막 모습은다시 자연’이었다.  어쩌면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거쳐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모습과 스스로 해야 할 역할들마지막엔 보다 성숙한 모습의 하천으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청주의 젖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합수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모습으로 인간의 편의에 의한 하천이 아닌 때론 사람들과 어울리고, 때론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그런 어머니와 같은 인자함을 지닌 하천으로 발전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참고 자료]

 청주 근세 60 사화』(청주 근세 60 사화 편찬위원회)

 청주지명유래』(청주시·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1999)
 
청주시지(淸州市誌)()(청주, 1997)
 
『미디어 다음』(2005.01.25)

윤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