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한국 사회에 파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을 통해 소개된 미래보다는
TV
뉴스를 통해 우리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게 등장한 미래가 충격적이긴 했나 보다.
“인류를 이기다니···” 인공지능을 둘러싼 공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대되었다.
제각각의 상상력으로 호사가들은 미래를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이 승부에 감정이입할 때 이미 기회를 보고 현실로 만든 에코와 왓슨 

인류 대 기계의 승부는 어떤 스포츠게임보다 더욱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이런 승부는 져야 재미있다. 어느새 인류의 편이 되어 감정 이입을 하기 때문이다. 딥 블루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길 때도 그랬고, IBM 왓슨이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을 이길 때도 그랬다. 승부가 한국에서 열렸고 체스나 제퍼디와는 달리 우리에게 친숙한 종목인 바둑이다 보니 체감 온도도 남다르다. 또한, 바둑은 이들 경기와는 달리 그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기에, 한정된 입력값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뽑아내는 그 신기(神技)가 놀랍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의 A매치 쇼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있는 생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상용화된 IBM의 왓슨이나 아마존 에코(Echo)에 오히려 주목해 볼 만하다. 먼저 아마존의 음성 비서 내장 무선 스피커, 에코는 아름다운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에코가 잘 팔리고 있다는 뜻은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리는 매주 10억 건수의 요청을 처리하고 있고, 안드로이드 폰의 검색은 20%가 음성이다. 그 가능성을 실생활로, 그것도 실용적으로 가져온 것이 바로 에코다. IBM 왓슨은 제퍼디의 승리 이래 벌써 5, 그때 이미 보여줬던 언어능력을 지금 군사에서 의료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십분 활용 중이다. 왓슨은 실생활의 뒷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클라우드로 올라가 API를 열어놓고 있다. 또 다른 혁신과 콜라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 셈이다.


   


공상과학에서 현실로 고객을 데려올 때 생기는 기회

실생활의 앞뒷면에서 이미 쓸만한 제품 사례를 만든 에코와 왓슨, 인공지능의 시대는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공지능이라 하면 어벤저스의 자비스나 울트론처럼 자아가 강한 기계를 떠올리고 만다. 그리고 지나치게 상상력을 발휘해 두려워하거나 혹은 현실과의 격차에 실망하면서 뒤돌아서곤 한다. 인공지능이란 단어가 문제인데, 인공지능이라 하면 마치 인공장기처럼 인간의 일부를 인공으로 재현하는 것이란 뜻일 테니까, 당연히 인간 지능의 가장 인간다운 부분도 구현해냈으리라 생각해서인가 보다.

체스나 바둑을 둔다거나, 자동차를 운전한다거나, 퀴즈를 푼다거나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치우는 모습을 보면 그런 짐작도 틀린 건 아니다. 딥러닝과 같은 기계학습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인지 과정을 흉내 내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의 인공지능 응용사례는 대부분 인간의 조수, 보조자, 파트너다. 암과 관련 된 단백질에 대한 논문은 7만 편이 넘는다. 이를 한 명의 의사가 다 읽고 이해하려면 40년쯤 걸린다. 40년 뒤면 눈앞의 환자는 이미 가고, 연구결과는 추가로 또 쏟아져 나와 있을 것이다. 덧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대신 몽땅 읽고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눈앞의 환자를 살려낼 유용한 통찰을 당장 건져낼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쌓여가는 빅데이터, 어쩌면 그 데이터의 전후 관계 사이에 내일의 비즈니스 찬스를 위한 엄청난 인사이트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수 데이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기 힘들다. 설령 의지가 생겨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알 수 없다. 기업 고객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늘 깔끔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쓸만한 자료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데이터가 대다수이기에 쿼리를 날리는 일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당장 인간처럼 이해할 리는 없더라도, 인간이 뱉어 놓은 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관련성을 끄집어내 통찰을 읽어내는 일은 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휘라는 데이터가 패턴에 따라 흩어져 있는 인간의 언어 또한 난공불락은 아니다. 왓슨은 그 대표적 노력의 하나다. IBM이 왓슨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왓슨의 후광효과에 편승하고자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까지 왓슨의 브랜드로 수렴시키고 있는 이유 또한 기업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애로사항, 즉 기회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정형·비구조의 언어 덩어리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노력은, 검색엔진에서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구글의 역사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며 시장은 커지고 있다.


검색 그 이후의 세계, 대화하며 학습하는 기계가 온다

인터넷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광고든 문맥 광고든 지금까지의 인터넷 광고는 주로 소비자의 의도를 재빨리 파악하여 그 의도에 걸맞은 광고를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소비자가 자신의 의도를 검색어로 명쾌히 표현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현실은 이조차 힘들거나 귀찮은 경우가 많다. 난 내가 지금 무슨 기분인지 알지 못한다. 일상의 우리가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는 표현은 그냥오늘 뭐 먹지?”라는 소박한 중얼거림 정도다. 이때가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이 개입할 때다. 최선을 다해 현재의 날씨, 위치, 시간, 그리고 소비자의 개인화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 만족할만한 제안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셰프가 되어 식자재와 레시피를 소개할 수도 있고, 가까운 맛집을 광고해줄 수도 있다.

사용자의 질문 중에는 정답이 없는 질문도 많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열린 질문들, 무엇이 궁금한지 정리가 안 된 경우들. 이 경우 아무리 빅데이터의 입력을 쏟아 넣어도, 출력은 모호해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거꾸로 질문하는 힘이다. 그리고 인간이 판단하게끔 한다. 그 선택지의 근거도 함께 제공해주는 친절함이라면 더욱 기특하다. 이렇게 주고받는 상호작용은 축적된다. 마치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모국어를 배워가듯. 사용자와 교류가 없을 때는 고전이나 인터넷과 대화한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똑똑해진다. 스스로 학습하는 학습기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기계의 효과가 두드러질 수 있는 곳은 앞서 잠시 언급한 의료 분야다. 늘 새로운 신약과 새로운 논문, 그리고 임상실험결과가 발표되지만, 당장 병에 걸린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의료 현장과 첨단 연구 사이에는 깊고 넓은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의사나 간호사가 게을러서는 아니다. 그들은 당면한 과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한 우직한 장인 정신이 치료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만약 왓슨과 같은 조수가 거꾸로 제안을 해 줄 수 있다면, 학습하는 병원이 만들어진다. 현대의학이 민간요법을 뛰어넘었듯이, 언제까지 종래의 치료법만을 사골처럼 우려낼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모두 알고 있다. 최종적인 판단은 환자와 의사의 몫이지만, 눈앞의 환자와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곧 의료이기도 하다. 명의들은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전문직 및 지식 노동자의 인지 기능을 보좌하는 파트너는 그 활용범위가 끝이 없다. 혼자는 도저히 다 볼 수 없는 막대한 양의 판례로부터 현재 케이스에 딱 적합한 사례는 없을지 왓슨이 백그라운드에서 조용히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왓슨은 IBM 창업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는 하지만, 자꾸 홈즈의 조력자, 왓슨이 떠오른다.



왓슨의 기회, 그리고 한국에서의 기회

알파‘고’는 그 이름처럼 아직은 바둑(, Go) 이외에 특별히 보여준 것이 없다. 반면 왓슨은 기업용 솔루션으로 등장해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제퍼디에서 인간을 제패한 것이 이미 5년 전이다. 그 후 맹렬한 속도로 응용 분야를 넓혀가고 있기에, 아직은 우위에 서 있다. IBM 왓슨이 개발자 대상으로 첫 API를 공개한 것도 벌써 2013년이다. 게다가 왓슨은 이미 한국어와 비슷한 일본어를 할 줄 안다. 올해 일본에서 자연언어분류 등 여러 서비스가 오픈했고, 소프트뱅크 등 일본기업의 도입도 시작됐다. 한국진출로 한국어 학습의 동기부여가 된 지금이기에, 앞으로가 기대된다.

한국에서의 왓슨 사업을 고려할 때, 기업 입장에서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 솔루션을 기업에 도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잠시 생각해 보면 기회가 보인다. 인공지능은 많은 기업에게 여전히 그저 공상과학의 영역. 하지만 지금 클라우드에서 돌고 있는 왓슨의 API를 활용,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입력하여 우리 기업만의 조력자 왓슨을 초빙하고 또 교육할지 기업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그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지금까지 고객기업이 의뢰하는 일들은 대부분 전산화, 즉 계산을 하거나 통신을 하거나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일을 인공지능 파트너에게 맡길지 그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모습을 설계하는 일, “한글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보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한국에서의 왓슨 생태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하지만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구글의 강점은 다국어를 다국어로 생각하지 않고 접근하는 그 범용성에 있다. 이미 구글 번역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마음만 먹으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세계 언어의 동시 진행이 가능한 구조다. 의외로 빠른 속도로 자연어 처리 성능에 근간한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왓슨 진영으로서는 방심은 금물이다.


SK주식회사 C&C 사보 'Create & Challenge' 6월호의 'TREND REPORT' 코너의 컨텐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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