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백지원은 특이한 몽상가다. 늘 예측불허의 발칙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기 때문이다청담동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색건물 ‘플래툰 쿤스트할레’로 세간의 허를 찌른 게 그 시작군용 컨테이너 28개를 조합해 만든 이 건물은 무명의 그에게 2009년 건축가협회상과 놀랄 만한 유명세를 안겨주었다. 이후 거대한 종이박스 형태의 신개념 팝업 스토어 ‘네이버 앱 스퀘어’로 레드닷과 iF 커뮤니케이션, IDEA 등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를 석권한 그는, ‘컨테이너 건축가’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혁신적 크리에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 클럽 순위 6위에 랭크된 ‘클럽 옥타곤’, 성수동의 새로운 패션 메카 ‘커먼 그라운드’ 등 맡는 작업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히트 공간 메이커 ‘얼반테이너’의 대표이기도 한 백지원. 그가 ‘재미’와 ‘Play’에 몰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Q. 건축도가 된 이유무엇인가요??

놀이하듯즐겁게.

저는 뭐든 즐거워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재미있게신나게놀이처럼 일에 접근해야 새롭고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믿거든요제가 건축을 시작한 이유도 ‘Joy of Building’ 즉 만드는 즐거움 때문입니다‘난 만드는 걸 좋아하고 잘 하니까 뭔가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사실 처음엔 요리사가 되려고 했었어요그런데 스위스 호텔학교에 보내달라는 제 요청을 어머니가 ‘형편이 안 된다’며 딱 잘라 거절하시더군요바로 접었죠(웃음). 다음엔 ‘파일럿이 돼볼까’ 했어요모형 항공기 만들기에 소질이 있는 데다대회에 나가 과학기술부장관상을 탄 적도 있거든요그 얘길 아버지께 했더니 아버지가 공군 파일럿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해 주셨어요그런데 막상 전 시력도 안 좋고 체격조건도 파일럿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건축은 어찌 보면 현실적인 대안이었어요외할아버지가 건축가셨던 데다 어머니는 가구 디자인 공부를 하셨거든요어린시절부터 목장에서 뛰놀며 이글루대나무 스키돌다리 등 안 만들어본 게 없을 정도라 건축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일단 전주를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한 몫 했습니다제가 좋아하고 원하는 모든 문화의 중심이 서울이었으니까요.


 

Q.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인가요?

고정관념이. 와르르.


제가 국민대 건축학과 93학번인데, 당시 과 학풍이 건축설계에 집중하는 분위기였어요 . 건축가 김수근 선생님이 학장으로 재직하시면서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모티브로한 고유의학풍을 정립하셨거든요. 덕분에 건축관련 신기술이나 트렌드의 도입도 빨랐습니다. CAD 수업을 최초로 시행한 게 국민대였으니까요.

수업도 남달랐던 걸로 기억해요. 특히 1학년 때 들었던 금누리 교수님의 ‘도형연습’ 수업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스케치 준비를 해오라고 하셔서 스케치북과 4B연필을 준비해갔는데 그걸 전부 걷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시더라고요. ‘스케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툴’이라는 말씀과 함께요. 그러곤 아무 종이에나 샤프로 쓱쓱 그림을 그리셨어요. ‘어떻게 모든 사람의 마음이 똑같을 수 있냐?’는 준엄한 질문 같았죠. 파격 그 자체였고, 충격적인 수업이었어요.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이기도 했고요. 이후 금누리 교수님 연구실에서 뉴미디어를 활용한 전시 준비도 돕고, 금누리체 만드는 데도 참여하면서 많은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하게 됐어요. 함께 술 마시고 다양한 주제로 토론도 하면서 ‘사회에 책임이 있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Q. ‘컨테이너 작가’라는 닉네임을 갖고 계신데, 왜 컨테이너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이동하는. .

컨테이너는 가볍고 튼튼하고 가격까지 싼 최고의 3차원 구조물이에요. 게다가 언제든 이동이 가능하죠.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동 가능한 집이 늘어나면 노는 땅이 늘어날 테고 자연히 땅값도 하락하지 않겠어요?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면 결과적으로 컨테이너 하우스의 주인이 땅주인의 클라이언트가 되는 ‘역전현상’도 일어나게 되겠죠. 저는 청년주거문제나 환경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누구나 컨테이너로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쉽고 간편한 건축적 Tool Kit을 만든다면, 그리고 이를 오픈 플랫폼 형태로 대중과 공유한다면, 내 집 마련을 평생숙제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환경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컨테이너 하우스는 조립과 해체,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미래에 절대 남지 않을 건축물이거든요.

 


Q. ‘얼반테이너’는 대표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지향점. 놀이터.

‘얼반테이너’를 설립한 건 2009년 ‘플래툰 쿤스트할레’로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이후입니다. 그전까진 8년 정도 목수 일부터 디자인, 회계, 영업까지 모든 걸 혼자서 소화하는 1인 스튜디오 체제로 일했어요. 28개의 군용 컨테이너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1인 스튜디오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고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예술적 · 문화적 자극도 많이 받았고, 청년들에게 창의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서브 컬처의 중요성은 물론, 건축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미래의 건축가는 문화를 베이스로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를 가장 쉽고 빠르게 실현할 수 있는 도구가 컨테이너라는 게 제 결론이었고요. ‘얼반테이너’는 이 같은 생각을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도시를 뜻하는 ‘Urban’과 ‘Container, Entertainer’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tainer’를 조합, ‘도시를 담는 유쾌한 그릇’이라는 지향점을 나타낸 거죠.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여러 그릇이 합해진다면 사람들 또한 더 즐겁고 행복해질 거란 생각을 담고 있기도 하고요.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저나 얼반테이너의 구성원이 먼저 즐거워야겠죠.

제가 무조건 ‘재미’를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일’이 즐거운 ‘놀이’가 될 때 결과물의 완성도 역시 올라가니까요.


Q.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미래건축, 어떤 모습인가요?

유저 중심. 모듈건축.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겠지만, 기본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그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이거든요. ‘클럽 옥타곤’을 예로 들면, 전 이곳을 ‘20대들의 오페라하우스’라고 생각했어요. 20대가 즐겁게 놀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설계해야겠구나’ 결심했죠. 이를 위해선 섬세한 음향설계가 필수였어요. 클럽의 핵심은 음악이니까요. 다음으로 어딜 가나 똑같은 식상한 메뉴를 완전히 바 꿔버렸죠. 클럽에 오픈 키친을 만들고, 유명 셰프를 영입하는 식으로요. 모든 것을 소비자 관점으로 사고하고, 유저 중심으로 재편한 겁니다. 제 생각엔 미래의 건축도 아마 이런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공간을 단지 설계하고 시공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간에 담을 내용까지 고민하는 비즈니스 디자인, 브랜딩 작업이 중심이 되는거죠. 그 기반은 최첨단 ICT기술과 모듈 건축이 될 테고요. ICT기술을 서비스 관점으로 집약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빠르게 접목할 수 있는 게 계량화 · 정량화가 가능한 모듈건축이거든요. 물론 이런 진지한 고민 외에 재미난 몽상들도 많이 하고 있죠. 우주시대가 곧 도래할 테니, 그때를 대비해 우주여행자를 위한 호텔이나 리조트를 설계해야겠다, 에너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달에 간 광부들이 좀더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재미난 클럽도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우주용 샴페인잔이나 맥주캔도 만들어야겠네, 이런 즐거운 생각들을요.



♣ 출처 : SK주식회사 C&C 사보 ‘Create & Challenge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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