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몸짓으로 세상과 어우러지다

발레가 몸짓의 예술이기 때문일까. 최태지 전前 국립발레단 단장은 목소리보다 눈빛으로, 언어보다 손끝으로 다양한 감정을 실어낸다. 재일교포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국립발레단을 이끌었던 그녀의 만만치 않은 내공은 이토록 조화로운 표정과 몸짓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봄볕이 한가득 내려앉은 예술의전당, 그곳을 함께 거니는 최태지 대표와 고승우 사내기자는 간간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짓는다.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친 최태지 대표, 그리고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8년간 유학 생활을 했던 고승우 사내기자 사이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어우러지는 하모니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고승우 사내기자는 발레리나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한국 최고의 발레단을 훌륭하게 이끈 최태지 대표의 조화로움에 감탄하며 그녀의 발레 이야기, 인생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릴 적, 교토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어요. 집 앞에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었는데, 심심할 때마다 드나들었죠. 스크린 속 오드리 헵번이나 비비안 리를 보며 내성적인 동양인이 아닌 자유롭고 세련된 여성을 꿈꾸곤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발레 학원이 생겼는데 동경에서 오신 선생님이 딱 제가 꿈꾸던 여성상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반해 발레를 시작했어요. 발레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발레는 저를 자유롭게 해주거든요.”

 

그렇게 재미를 붙이고 독하게 연습하는 동안 그녀는 어느덧 눈에 띄는 발레리나로 성장했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1981년 일본발레협회를 통해 프랑스 연수생으로 뽑혔지만,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 꿈이 꺾인 그녀에게 운명처럼 손을 내민 존재는 다름 아닌 부모의 조국, 한국이었다. 당시 국립발레단 단장이었던 임성남 씨 권유로 최태지 대표는 1983년 국립발레단 객원 무용수로 합류하게 됐다.

 

▶ 진심이 통할 때까지

발레’라는 꿈과 열정 하나만 품고 한국을 찾은 최태지 대표. 그러나 한국말이 서툰 재일교포 발레리나에 대한 견제와 텃세는 생각보다 심했다. “토슈즈에 바르는 송진가루를 못 바르게 한 적도 있고, 무대 의상을 갈아입을 때 아무도 지퍼를 올려주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처음엔 ‘나빴다’고만 여겼는데 어느 순간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에서 공수해온 미제 토슈즈를 나눠 주는 등 먼저 베풀면서 적극적으로 거리를 좁혀갔어요.”

 

이는 발레가 가르쳐준 어울림의 힘이기도 했다. 최고의 무용단은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군무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녀는 하모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어긋나던 몸짓들이 동료 무용수와는 물론 음악, 조명, 의상 그리고 관객과 하나 되는 순간의 희열을 알기에 그녀는 낯선 환경에서도 차근차근 스며들 수 있었다.

 

그뿐인가. 최태지 대표는 객원 무용수에서 정식 단원을 거쳐 그저 빼어난 실력만으로는 오를 수 없는 국립발레단 단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1996년, 그녀 나이 36세 때 일로 그야말로 ‘최연소’ 단장이었다.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상대방이 귀를 기울이더라고요.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어요. 말이 서툴더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또 한 번 배우게 됐습니다.”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행정, 재무, 마케팅 등 조직 곳곳을 살펴야 하는역할이 버거울 법도 했지만 그녀는 무대 위에서처럼 ‘함께 가자’고 마음먹었다. 독단적 결정, 이기적인 선택은 피한다는 기본을 지키며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대 위뿐만 아니라 관객과 공연계 전체를 바라보며 고민한 끝에 그녀는 ‘해설이 있는 발레’ 와 ‘찾아가는 발레’를 기획해 국립발레단을 대중 속에 각인시켰다.

 

“더욱 많은 단원들에게 무대에 서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사실 3시간의 발레는 저도 지루하거든요. 그래서 유명 발레 공연의 하이라이트만 모은 1시간짜리 갈라 공연을 기획했죠. 비록 소극장이지만 무대 위에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김주원 같은 스타들이 많이 배출됐어요. 더불어 발레의 대중화를 이끌 수 있었죠.” 그녀는 국립발레단과 대중 사이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는 모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발레는 도시의 고고한 공연장에서 만 즐길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시골 마을까지 찾아갔다.

 

▲ 1987년 <백조의 호수> 공연 당시 최태지 단장.                            ▲ 1988년 <왕자호동> 공연 당시 최태지 단장.

                                                                                           그녀가 기획한 이 창작발레는 전 세계발레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버스 한 대만 협찬을 받아 무료로 하는 공연이고, 분장실도 없이 체육관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는데도 모든 무용수와 스태프가 행복해했습니다.

 

발레를 처음 보는 시골 어르신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무슨 말이 필요한가요. 표정에서 다 느껴지는 걸요.” 꿈꾸듯 당시를 회상하는 최태지 대표의 얼굴에는 금세 미소가 번진다. 땅끝마을 해남까지 내려가는 길이 고되기도 했지만 공연을 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참 잘 왔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이렇게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있는 10년 동안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던 그녀는 2013년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1년간 휴식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올봄 ‘최태지댄스컴퍼니’의 문을 열고 다시 발레계로 돌아왔다.

 

'컴퍼니’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두 사람이 소박하게 의기투합한 모양새다. 하지만 그 첫걸음이 제법 의미심장하다. 기존에 접하기 힘들었던 ‘뒷이야기’를 가지고 <최태지, 발레를 톡하다>라는 색다른 공연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무용수가 어떤 과도기를 거쳐 성장했고, 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무용수가 직접 출연해 관객과 함께 나누는 자리랍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발 모양이 틀어질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하는 무용수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만으로 끌어가는 최태지 대표의 새로운 공연은 또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까.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어선 그녀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망치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어요. 그럴 때마다 초심을 생각했어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품었던 ‘초심’이요. 힘든 것도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얻는 고통이잖아요. 그래서 발레와 함께하는 동안은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은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예술가로서의 끝없는 단련은 물론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 우두머리로서의 책임감까지 시련은 많았지만 이제는 기꺼이 웃어넘긴다. 쉰 살을 넘긴 자의 여유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이제는 삶이 편해졌다. “제 어릴 적 로망이 오드리 헵번이었잖아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화려한 활동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그녀처럼, 문화에서 소외된 지방에서 많은 공연을 열고 싶어요. 음악과 무용으로 그들을 안아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굳이 ‘오드리 헵번처럼’이어야 할까. 늘 새로운 길을 열며 도전해온 그녀라면 그저 ‘최태지답게’ 사는 것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 사내기자 취재수첩

▶ 최태지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 ‘발레’를 통해 소통을 이야기한 최태지 대표와 고승우 사원.

 

발레 공연을 대하는 자세나 매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립극장과 같은 대규모 공연장을 찾을 때는 격식을 차리는 편이 좋지만, 작은 공연을 보러갈 때는 부담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어요. 발레는 무용수와 관객이 밀접하게 교감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관객이 긴장하고 불편해하면 무용수도 경직되기 마련이거든요. 운동화 신고, 점퍼 입고 편하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SK C&C, 더 나아가 SK그룹이 혹시 발레 공연을 기획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발레가 좀 더 대중화되려면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지방 소도시에서 발레를 접할 기회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으면 좋겠습니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 가르치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죠. 발레 문화 발전을 위해 무용계, 정부, 기업이 모두 함께 노력한다면 행복지수가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요?

 

▶ 최태지 대표는...

2015년~ 세종문화회관 이사회 선임이사

2008년~2013년 국립발레단 대표

2004년~2007년 정동극장 극장장

2001년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 심사위원

1996년~2001년 국립발레단 단장

1983년 국립발레단 객원 무용수

 

♣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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