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적 사고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질문 하나에 줄줄이 딸려 나오는 융복합 답변을 숨 가쁘게 좇다가 뇌 구조도를 그의 두상에 적용해봤다. 일단 한가운데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이 ‘인공지능’이긴 한데, 곁가지로 뻗어나간 관심 분야가 하도 많아 포기하고 말았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세상을 해석하는 그, 새로운 미래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1.4kg의 우주’란 표현이 무색치 않게 뇌는 신비롭다. 감각기관을 통해 모은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며 각 기관에 명령을 내리고 지성과 감성, 영성 등 비가시적인 세계를 관장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시를 쓰고 로봇을 만드는 것도 모두 뇌가 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만나는 뇌는 두개골 안에 들어있는 주름진 고깃덩어리일 뿐. 심장처럼, 허파처럼 만지고 해부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궁금한 세계는 손끝에 닿지 않는다.

“뇌를 보며 정말 신기했던 건, 뇌에는 신기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죠. 해부해봤지만 그 속엔 영상도, 소리도, 자아도, 기억도 없었습니다.

고깃덩어리, 힘줄덩어리에 불과한 물질로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사랑을 하고, 시를 쓰는 것이죠. 여기서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이 시작됩니다. 물리적인 실체가 지능과 성격과 감정과 자아를 만들 수 있다면, 단백질 세포가 아닌 기계와 반도체로도 뇌와 동일한 기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김대식 교수가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사람의 지능을 모방한 기계 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뜻하는 ‘인공지능’이다. 최근 1~2년 사이 인공지능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외부 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 의미를 찾는 학습 과정인 ‘딥 러닝Deep Learning’이 등장했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의 현실화를 가로막던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약한 인공지능weak AI’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다만 인간처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의 실현까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질문과 고민의 양상도 바뀌었다. 더 이상 인공지능의 실현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현실화로 인류에 닥칠 문제가 무엇인지 묻고, SF 소설과 영화를 통해 익숙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걱정한다. 빌 게이츠, 스티븐 호킹 등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경쟁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김대식 교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인공지능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 같은 우려에 저 역시 동감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산업혁명 이상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테니까요.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프레임이 바뀌다 보니 기존 질서와 시스템이 아예 리셋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노동의 정의가 바뀔 수도 있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사라질 수도 있겠죠.

가령, 인공지능을 장착한 무인자동차가 보편화된다면 운수업 종사자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자동차 관련 산업이 대폭 개편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상상은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인간의 뇌만이 할 수 있던 일을 기계가 하기 시작한다면, 더욱이 이 기계가 무한한 지능과 인지능력으로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면 무수한 직업군이 사라질 것이며 여기에는 비서, 변호사, 회계사, 기자, 교수와 같은 화이트 컬러 직종이 대거 포함될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가 20~30년 후에 도래한다면, 중년에 이른 지금의 이십대는 기계에 밀려나는 세대가 될 것이며, 지금의 십대와 어린이들은 인류 최초로 기계와 일자리를 두고 겨루는 세대가 되겠죠. 오늘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 인공지능 시대, 어떻게 자신감을 지킬까?

지금보다 더한 생존경쟁 사회라니, 심지어 인간의 노력으로는 갖출 수 없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AI와 겨뤄야 한다니 한숨부터 나온다. 암울한 세계를 그려준 뒤 김 교수가 던진 조언은 ‘점검’과 ‘상상’이다.

개인과 기업 모두 자신의 가치를 솔직하게 돌아보고 앞으로 자신의 일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상상할 것. 아울러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모색할 것. 이를테면 산업혁명 이후에도 살아남아 그 가치를 갱신한 피렌체의 수제 공방 장인들처럼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엔 무수한 질문이 따른다. 그 가운데 ‘나’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라 하겠다.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는가? 인간은 왜 필요한가?….’ 이는 김대식 교수의 인문학 에세이 <빅퀘스천Big Question>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철학과 신학, 문학과 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묵직한 질문 가지를 뻗어낸다. <빅퀘스천>을 향해 사람들이 으레 던지는 대표적인 우문愚問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과학자가 왜 철학책을 냈는지. 둘째, 답은 왜 없는지.

“서양의 과학 문명이 그리스에서 시작됐다면 3,000년 전, 지중해의 따뜻한 해변에서 하얀 수건을 두른 긴 수염 할아버지들의 질문에서 비롯됐겠죠. 존재에 대한, 하늘에 대한, 별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질문들 말입니다.

이를 풀어가는 표현 방식이 시적으로, 철학적으로, 수학적으로 달라질뿐 과학이나 공학의 시작은 바로 그러한 큰 질문들이었을 거예요. 원래 과학은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고,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만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죠. 그리고 <빅퀘스천>에서 해답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보시다시피 책 제목은 ‘퀘스천’, 질문입니다. 답이 아니에요.” 책 속에는 폭넓은 인문학 고전들이 대거 언급된다. 이 고전을 대부분 십대 때 읽었다는 김대식 교수의 이력은 남다르다.

연구 주제는 뇌 과학과 인공지능이지만, 독일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하며 풍성한 인문·철학 교육 속에 성장했다. 노벨상 수상자만 32명을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뇌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미국 MIT대학에서 뇌인지과학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일본의 노벨상 수상의 산실로 손꼽히는 이화학RIKEN연구소에 재직했다. 이후 미국 미네소타대, 보스턴대 등에서 15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가 지난 2009년 귀국해 카이스트대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 현장에 있는 만큼 김 교수는 우리 교육 환경에 대한 우려와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을 알자면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관계를 알아야 할 것인데, 작금의 교육 환경 속에선 학생 개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경험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진정 행복한지 알게 되면, 무엇을 배워야 할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한 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을 찾아가는 게 바른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휴대전화 품질과 해상도에 갖는 관심만큼이라도 아이들의 인생 품질과 해상도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자부심은 나 자신에서 비롯돼야 합니다. 막연한 민족주의처럼, 내 능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닌 무작위로 얻어걸린 어떤 조건에 대한 자부심은 건강하지 않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긍심은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 믿음이 발아하기 위한 조건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겠지요. 건강한 자부심을 누리고 싶다면 경험의 폭을 넓히고, 매순간 끝없이 질문하기 바랍니다. 질문이 곧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니까요.”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화두를 얻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뇌로, 우주로, 철학으로 뻗어나가며 무궁무진한 세상을 선보였다. 이제 그가 던진 화두로 해답을 완성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먼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내기자 취재수첩 김대식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앞서 SK C&C, 더 나아가 SK그룹 구성원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SK는 다른 국내 대기업들과 비교할 때 인공지능으로 득을 볼 수 있는 사업 구조입니다. 반도체부터 네트워크, 통신 서비스까지 연결된 사업을 수행하고 있잖아요. SK C&C는 그 안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고요. 다만, 진짜 잘할 수 있는 사업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런 장점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부심을 갖는 데 필요한 비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성과, 최선을 다해서 일궈낸 성취에 대해 스스로 칭찬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은 의식적인 노력으로 갖춰야 해요. 단, 이 자부심이 타인을 무시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 성공해본 사람은,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타인을 결코 무시할 수 없거든요.

사내기자 ‘이은지 대리’는 SK C&C 구성원에게 좋은 글과 사진을 전하고 싶다. “Happiness is the meaning and the purpose of life, the whole aim and end of human existence.”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은 채우고 후회는 비우고 싶은 사내기자.

♣ 글 : 고우정 |사진 : 현일수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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