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내로 본 세 편의 극이 있습니다. 세 편 모두 뮤지컬이지만 극의 크기는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크기라 하면 편의 상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의 크기에 따라 대극장극, 중극장극, 소극장극이라 부르는데요. 공교롭게도 제가 보고 온 세 편의 뮤지컬은 세 종류의 극으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극의 규모에 따라 이들의 매력은 서로 비례할까요? 아니면 상관이 없을까요? 짧게나마 제가 보고 온 세편의 대, 중, 소극장 뮤지컬들을 차례로 영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초연 10주년에 빛나는, <지킬 앤 하이드>

이 뮤지컬을 모르시는 분들은 거의 없겠죠? 의사인 지킬 박사가 실험을 통해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는 약을 발명하지만 끔찍한 악의 화신 ‘하이드’가 눈을 뜨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공연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를 단 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완벽한 극이었습니다. 무서운 티켓 값 때문에 대극장극은 선뜻 볼 수가 없어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요. <지킬 앤 하이드>만큼은 자리에 앉아 극이 시작하는 순간 그 가격을 잠시 잊게 만들었답니다. 그만큼 전혀 다른 두 인격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과 노래, 음악감독이 직접 지휘하여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선율, 덧붙여 고급스럽고 화려한 무대 장식과 구조는 눈과 귀, 마음을 모두 흠뻑 취하게 했습니다. 대중에게 제일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이라는 넘버도 좋았지만, 일명 컨프롱이라고 불리는 ‘대결(Controntation)’이 저에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조명이 달라짐과 동시에 지킬과 하이드가 번갈아 서로의 몸을 차지하려 싸우는 모습을 격정적으로 연기하는 박은태 배우 덕분에 넋을 잃고 볼 수 있었지요. 티켓 가격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조금 더 많이, 넓게 극을 이해하시려면 극의 넘버들을 귀에 익히고 가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Controntation / 조승우

추리 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아가사>

다음으로는 중극장극인 <아가사>입니다. 극은 실제 ‘아가사 크리스티’가 실종 되었던 11일간의 사건을 모토로 아가사가 자서전에서도 밝힌 적 없는 진실이 무엇일지 픽션화한 작품입니다. 아가사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하녀, 남편, 편집장, 기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아가사와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서로가 용의자라고 떠밀며 회피하려 듭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범인을 찾는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극은 아가사가 작가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때 아가사의 매력적인 친구로 등장하는 로이라는 인물이 저를 아주 설레게 했습니다. 능글맞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로이는 아가사와 ‘독’이라는 위험한 물질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며 아가사와 점점 더 친밀해집니다. 극을 보시게 되면 아시겠지만 로이는 무척 중요한 캐릭터인데요. 로이 역을 연기한 강필석 배우의 우아하고 치명적인 연기가 캐릭터를 이해하고 극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시고 또한 인간이 지닌 악이 개개인에 따라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싶으시다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네 안의 독 / 강필석


어른의 시선에서 보는 유쾌한 B급 동화, <난쟁이들>

마지막으로는 소극장극 <난쟁이들>입니다. <난쟁이들은> 국내 창작 뮤지컬로, 동화나라에 사는 난쟁이인 찰리와 빅이 동화 속 공주들이 성에 모여 무도회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들의 사랑과 꿈을 찾기 위해 모험길에 오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동화를 표방하는 극인 만큼 변신장면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신데렐라와 인어공주에게 도움을 주었던 마녀에게 이 두 주인공들도 도움을 받아 난쟁이에서 멋진 꽃미남이 되어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은 왠지 모를 흐뭇함을 자아냅니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유치하고 단순하지만 여러 배역을 오가는 조연 배우들의 감초 같은 연기로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특히 왕자 1, 2, 3이 왕자들의 마스코트와 다름 없는 하얀 백마 대신 착한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는 투명 말을 타고 “뜨그덕~뜨그덕~” 내달리는 씬은 아주 일품입니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하고 춤을 출 때는 객석이 뒤집어졌답니다. 어릴 적 봤던 동화 속 공주님들의 새하얀 속내가 어른이 되어 보게 되니 까맣게 보인다는 건 제 마음이 까맣게 변해서 일까요? 이와 비슷한 상상으로 시작한 재미있는 극인 <난쟁이들>, 머리가 복잡할 때 한 번 보러 가는 것도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끼리끼리 / 전역산, 우찬, 송광일


배우와 관객이 스크린 사이가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로 숨을 쉬며 만난다는 건 참 즐겁고 설레는 일입니다. 생생한 현장감과 더불어 필름이나 CD로 구현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같은 극일지라도 매일 다른 극이 될 수 있지요. 극의 규모에 따라 들어가는 인원, 무대의 장치들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극들의 매력의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극을 보러 온 관객들의 즐거운 마음가짐과 배우들의 열정과 함께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눈과 귀, 마음까지 삼 박자가 골고루 충만해지는 즐거운 뮤지컬 덕분에 요즘 아주 즐겁습니다. 여러분들도 따뜻해지는 봄 날, 뮤지컬 한 편 보러 가시는 게 어떠실까요?

♣ 글 : 2015년 신입사원 이영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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