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문자라는 기적“(노마 히데키 지음, 돌베개)

한국인에게 한글만큼이나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이 또 있을까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배우기 쉽다는 자긍심에 뿌듯해 하지만, 정작 한글의 문화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일본인이 쓴 한글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80~90년대 사회과학 서적, 소위 운동권서적을 취급하던 출판사에서 펴냈다는 미묘한 신뢰감(?)에 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미술을 전공한 미학도였던 저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의 매력에 끌려, 서른 살에 도쿄외대에 다시 입학해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가 우연한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올해 초 이지만, 이 책은 2010년 마이니치 신문의 22회 아시아 태평양상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본래 한국어와 한글을 모르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일본어로 쓰여진 책을 한국인 제자들이 번역한 것인데, 단순히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글 소개서가 아닌  한글의 문화사적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글이라는 문자를 안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태어난 한가지 독특한 문자체계를 아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 즉 소리로 성립된 <>을 도대체 어떻게 <문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정말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한글이 문화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종에 의한 훈민정음의 창제를 한국어사 또는 동아시아 문화사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논하지 않고 언어학적, 문자론적 다양한 시각에서 간단 명료한 설명과 적절한 예시를 통해 이야기 해 줍니다.

 

한글에 관련된 저자의 지식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기로 하였다는 뉴스 기사에서부터 조선 후기 한글 서체의 변화, 구한말 주시경 선생의 업적에 대한 소개에 이르기 까지 넓고 깊은 해박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컴퓨터 시대에도 한글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하며 한글 폰트, 아래아 한글, 천지인 자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예를 들어 이야기 해 줍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기억에 남게 읽었던 부분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자 하는 세종과 이를 반대하는 조선의 지식인들, 특히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최만리의 상소문을 통해 논쟁을 풀이해 주는 부분입니다. “한글이 만들어지던 15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한자(漢字)는 삶 그 자체였다. 사대부인 양반의 자제는 이 세상에서 생명을 받으면 한자로 이름을 받았고 한자로 세계를 알아 갔으며, 한자로 벗과 말하며 한자로 시를 읊고 한자로 국가를 논하였다.” 이 시대는 <동아시아> <세계 전체>로 인식되었으며 조선의 왕이라 해도 중국 황제로부터 책봉 받는 일개 군주에 지나지 않던 시대입니다. 진시황 이후로 통일된 동아시아의 문자는 지금으로 따지면 <국제표준>과도 같은 것인데 천년 이상 사용해 오던 국제표준을 벗어나는 글자를 사용하자는 주장에 내가 만약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정음 반포를 찬성하였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저자가 설명해 주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해설을 듣게 되면, 한글 반포를 반대하던 최만리파를 단순한 중화 사대주의자로 바라보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식인이 지식을 쌓아 갈 수 있는 도구로서의 한자라는 의미는 종교적 신념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공감을 갖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음 반대파와 세종의 언어학적 논쟁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흥미진진 합니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도서 “한글의 탄생”은 단순한 한글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켜 주고, 지식과 사회 그리고 변화에 대한 화두를 다시 한번 돌아 보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한글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한글의 탄생”을 통해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후배에게 남기는 메모


우리와 같은 SW 엔지니어들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라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이것은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도,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고, 사물과 사건을 쉽고 간단하게 바라보는 능력을 갖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책을 읽어 달성하자고 한다면 독서라는 것 자체가 매우 지루한 업무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기술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짧은 시간에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을 배워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업무나 기술을 손에서 내려 놓고 소설이나 만화책을 읽으며 화자의 대사를 음미해 보는 것도 세상과 소통하는 지혜를 익혀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정을 즐기며 부담 갖지 말고 다양한 도서들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책 한권

 

신과 함께 저승편” (주호민 지음)

2010년에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되던 만화라 많은 분들이 이미 읽어 보셨을 것 같습니다. “군대에 갔다 오니 다니던 학과가 없어졌다는 주호민 작가의 외모 만큼이나 그림체는 예쁘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39세 김자홍씨가 과로사 하면서 저승의 일곱개 지옥에서 심판을 받아가는 과정을 긴장감과 더불어 위트를 포함하여 전개하고 있습니다.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 신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아주 훌륭합니다. 최소한 책을 읽어 가는 동안만이라도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면서 인생을 돌이켜 볼 시간을 줍니다.


 

후속인 “이승편”과 “신화편”도 웹툰으로 볼 수 있는데, 고생한 만큼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이 웹툰 작가와 SW개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책으로 구매 하였습니다.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이며 조만간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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